잘 익은 제철 바람은 그 어떤 과일보다 달다
계절의 문턱에서 불어오는 바람 한 줄기가 머물다 간 자리에 대하여
바람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다. 기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대기가 온도 차를 메우려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여름 내내 달궈진 지표면이 식어가기 시작하면, 찬 공기와 더운 공기가 서로의 경계를 밀고 당기며 그 틈새로 바람이 태어난다. 계절이 바뀌는 문턱이란 두 기단이 조용히 협상하는 시간이고, 그 협상의 부산물이 우리 뺨을 스치는 9월의 바람이다.
그 바람을 처음 알아채는 건 언제나 피부보다 코다. 풀이 조금 눕고, 흙이 조금 젖고, 어딘가에서 익어가는 것들의 냄새가 섞인다. 달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 냄새. 어떤 과일도 이렇게 넓고 느슨하게 달지는 않다. 걸으면서, 멈추면서, 다시 걸으면서 조금씩 받아 마시는 단맛이다.

늦여름의 수국은 아직 지지 않았지만, 꽃송이 사이로 스미는 바람의 결이 달라져 있었다.
수국이 아직 흰 꽃을 달고 있었다. 정확히는 흰색과 연두 사이 어딘가, 여름 끝물에 수국이 내는 그 특유의 색. 활짝 피었을 때의 선명함은 이미 가셨지만, 시든 것도 아니었다. 계절이 이행 중이라는 사실을 꽃이 먼저 알고 있는 것처럼, 조용히 색을 바꾸는 중이었다. 여름이 간다는 것은 이런 식으로 고지된다. 선언이 아니라 변색으로.
작년 이맘때도 이 바람이 왔을 것이다. 같은 기압 배치, 같은 온도 차, 같은 경로. 바람은 기억하지 않지만 몸은 기억한다. 어떤 냄새가 코끝에 닿는 순간, 작년의 그 오후가 불쑥 돌아오는 것처럼. 바람은 해마다 돌아와 나뭇잎을 흔들고, 처마 밑 풍경을 울리고, 골목 어귀의 간판을 살짝 기울인다. 서두르지 않고, 받아들이는 쪽의 속도에 맞춰서.

언덕 위 나무들이 구름 그림자를 받아내는 동안, 아래쪽에서는 바람이 잎을 넘기고 있었다.
구름이 크고 느렸다. 뭉게구름이 산등성이 위로 천천히 이동하면서 언덕의 나무들 위에 그림자를 드리웠다가 걷어갔다. 빛과 그늘이 번갈아 지나가는 리듬이 바람의 속도와 거의 비슷했다. 이런 날 어떤 숙소의 창문을 통해 하늘을 올려다보면, 방 안에 머무는 것인지 하늘 안에 머무는 것인지 잠시 경계가 흐려진다.
계절의 바람은 포근하다고 표현하면 조금 틀리고, 선선하다고 표현하면 조금 아쉽다. 피부에 닿는 온도는 분명 낮아졌는데 어딘가 부드럽게 안기는 느낌이 있고, 그 안김이 차갑지 않다. 여름 내내 긴장하고 있던 몸이 처음으로 힘을 빼는 순간, 바람이 그 자리를 채운다. 나뭇잎도 그렇게 반응한다. 바람이 불면 잎이 뒤집히고, 은빛 안쪽이 잠깐 드러났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짧은 인사처럼.
이 바람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기압이 다시 균형을 찾으면 바람은 잦아들고, 그 자리에 가을이 들어선다. 지금 이 순간은 여름도 가을도 아닌 그 사이, 두 계절이 잠깐 손을 맞잡고 있는 시간이다. 내년에도 올 것이다. 같은 온도 차, 같은 경로로. 그때도 나뭇잎은 잠깐 뒤집혔다가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고, 수국은 또 그 무렵에 색을 바꾸기 시작할 것이다.